“나는 정보화 시대에 한국을 지식과 정보의 강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오래된 꿈이었다. 나는 청주교도소에서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깜짝 놀랐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번을 정독했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감명을 받았다.
‘미래에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오는구나.’
감옥에서 깊이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독방에서 인류의 미래를 설계했다. 부수고 다시 짓는, 즐거운 상상이었다. 그러면서 관련 서적들을 읽어 나갔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쓴 책들도 흥미로웠다. 빠져들수록 경이로웠다. 감옥은 꿈꾸기에 좋았다.
지식과 정보의 강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비로소 그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초유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나는 정보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새 정부는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가 지식 정보 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습니다.
인류는 다섯 번의 혁명을 거쳤다. 첫 번째 혁명은 인간의 탄생이고, 두 번째는 약 1만 년 전에 농업을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 혁명은 5000~6000년 전에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강, 황하 유역에서 발생한 도시 문명이다. 네 번째는 대략 2500년 전에 인도·그리스·이스라엘·중국 등에서 일어난 사상혁명이다. 중국에서는 공자·노자·묵자·순자 등이, 인도에서는 석가와 바라문 승려들이, 그리스에서는 탈레스·아리스토텔레스·소크라테스·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이, 이스라엘에서는 이사야·아모스·학개·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를 중심으로 사상혁명이 일어났다. 오늘날 유행하는 현대 사상이라는 것도 뿌리를 찾아가면 대개 이 시기에 일어난 사상에 닿아 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18세기 산업혁명이다.
20세기는 산업혁명이 절정을 이룬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 과거 물질이 경제의 중심이었던 시대, 돈과 노동과 자원 혹은 땅이 경제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신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정보와 지식이 중심이 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여섯 번째는 21세기에 일어날 지식·정보 혁명이다.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이며 기회이기도 하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국부(國富)의 원천이다. 창조적인 지식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한 나라의 경제를 일거에 일류 경제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들은 산업화 사회에서 지식 사회, 정보화와 문화 산업 사회로 급속히 전환해 갔다. 그리하여 지식과 기술의 우위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지식이 없는 국가는 사라질 것이다’라는 미래학자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창조적 지식을 갖추고 이를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나라가 21 세기를 호령할 것이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떠한 나라도 몰락과 후퇴의 길로 들어설 뿐이다.
이런 배경에서 나는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의 건설’을 제창했다. 나는 나라 전체를 창의가 샘솟고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는 지식과 정보 중심의 국가로 혁신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문화·관광·정보·통신·디자인 산업을 1차적인 지식 집약 산업 지원 업종으로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하고자 했다.
지식·정보 혁명의 시대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역사는 시대의 격변기 마다 새로운 승자를 배출해 왔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영국을 세계의 패자로 만들었고, 19세기 말 중후장대 산업을 위주로 한 제2차 산업혁명이 독일과 미국을 세계 시장의 강자로 만들었다. 이제 21세기 지식 혁명의 시대에는 새로운 강국이 출현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식·정보화 시대를 앞서 갈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나는 믿었다.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인적 자원이 있으며 수천 년 동안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 온 문화적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6월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서 실리콘밸리를 찾았다. 그때 만난 스텐퍼드 대학 교수가 내게 말했다.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규모는 거대하지만 21세기 정보 산업이 경제 전체의 15퍼센트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확신했다. 21세기의 최대 강국은 바로 우리나라여야 했다.
‘우리 국민처럼 교육과 문화 수준이 높고 애국심이 강한 민족이 어디 있는가? 19세기 말에는 근대화의 지체로 산업혁명 대열에서 뒤떨어졌다. 그래서 100년 동안을 고생했다. 이런 시련의 역사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 『김대중 자서전 2』 , 159-161쪽.
2019-02-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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